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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예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

잡학큐레이터 2023. 5. 28.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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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말년에 프랑스 왕 프랑수아1세의 궁정 화가가 되었으며 1519년 5월2일 이 르네상스 최고 거장이 사망한 것은 루아르 강의 앙부아즈 부근에 있는 왕의 여름 별장 가까운 거처 클로 뤼세에서였습니다.  <미술가 열저>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왕이 몸소 죽어 가는 레오나르도를 두 팔로 받쳐 주었다고 합니다. 그의 어린시절을 바탕으로 어떠한 작품들과 기법을 사용하였는지 알아볼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

 

1.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어린 시절

1452년 피렌체 부근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어릴때부터 호기심 많은 성격이었습니다. 그의 잠재력을 알아차린 아버지는 안드레아 델 베키오에게 그를 소개 시켜 주었습니다. 결국 레오나르도는 18세의 나이에 피렌체 화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밑에서 수련을 쌓았으며 그에게서 그림, 조각, 건축, 설계에 이르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기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1482년에는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에게 군사 기술자로 일하겠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 말미에야 자신이 조각과 그림을 할 줄 안다는 언급을 했을 뿐입니다. 그는 1499년까지 공작의 집안에 머무르며 걸작 최후의 만찬벽화를 그렸습니다. 루도비코가 밀라노에 쫓겨나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렌체로 돌아가 가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이젤 페인팅인 <모나리자>를 그렸습니다. 한동안 그는 밀라노와 로마에서 성공을 거두며 작업했고 1515년에는 프랑수아 1세를 위해 기계 장치 사자 모양의 장식물을 만드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바사리는 레오나르도가 안장된 앙부아즈의 예배당까지 그의 관을 따라 60명의 걸인이 따라왔다고 전합니다. 레오나르도의 명성은 살아생전에도 뛰어났으며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그는 예술을 훨씬 뛰어넘어 수학, 과학,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합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지식에 대한 끝없는 갈증으로 그는 해부학과 공학에서 천문학에 이르는 다양한 과목을 공부했습니다. 이 다학제적 접근 방식은 나중에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2. 여러분야에서의 경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만족을 모르는 호기심과 지식에 대한 갈증은 그를 만능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공학 분야에서 레오나르도의 혁신적인 정신과 역학은 획기적인 디자인들을 탄생시켰습니다. 비행 기계, 전쟁 발명품, 유압 시스템에 대한 그의 스케치 렌더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창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 중 많은 부분이 그의 생애 동안 실현되진 않았지만 미래 세대의 발명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또한 해부학에 대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매력은 인체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해부와 정교한 도면을 통해 그는 해부학에 대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고 의학에 귀중한 공헌을 했습니다. Vitruvian Man과 같은 그의 해부학 삽화는 예술과 과학을 완벽하게 혼합한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게다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과학적 관찰과 조사는 지질학, 식물학, 천문학과 같은 분야로 확장시켰습니다. 식물과 동물의 디테일한 그림을 포함하여 자연에 대한 그의 세심한 관찰은 주변 세계를 이해하려는 그의 신념과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지질학과 천체에 대한 그의 스케치 노트는 시대를 앞장 서간 과학적 사고를 보여주었습니다.

3. 상징적인 작품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지만 그의 예술적 기량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모나리자는 수수께끼 같은 미소와 놀라운 기술로 아직까지도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1503년에서 1506년 사이에 그려진 모나리자는 색과 색조를 아주 미묘하게 혼합하는 기술인 스푸마토의 숙달된 솜씨를 잘 보여줍니다. 섬세한 붓놀림과 빛과 그림자의 능수능란한 표현은 얼마나 그 그림을 애정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예술적인 탁월함을 넘어 모나리자의 매력은 주체의 정체를 둘러싼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있어 끝없는 추측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모나리자 외에도 그의 예술 작품은 주목할만한 작품으로 구성됩니다.기념비적인 벽화 <최후의 만찬>은 그의 예술에서 감정과 스토리텔링을 아주 잘 나타내어 주는 작품입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대한 복잡한 감정적인 묘사는 이 작품의 주요 특징이기도 합니다.

4. 시각적 속임수 표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시각적 속임수로 인간 마음의 진실성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항상 현실 그자체만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되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가 착시의 영역에 영감을 받아 배후에 여러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착시 현상을 연구한 방법 중 하나는 모호한 수치를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보는 이의 인식에 따라 다른 모양이나 다양한 해석을 가진 이미지들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작품에 모호함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관객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모호성을 사용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모 마리아"로 알려진 그림입니다. 이 구성에서 성 안나와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얽혀 시각적인 퍼즐을 만듭니다. 이미지를 인식하는 방식에 따라 인물의 윤곽이 이동하여 엄마와 아이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습니다. 이 의도적인 모호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에 묘사된 더 깊은 연결과 관계에 대해 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또한 무대 디자인에서 레오나르도는 원근법과 착시에 대한 이해로 극적 효과를 강화하는 세트를 만들었습니다. 강제 원근법과 같은 기술을 사용하여 그는 무대에서 물체의 크기와 규모를 조작하여 웅장함과 환상적인 세트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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